저널/물성의 진실
선언2026년 2월 · 6분

물성의 진실

우리가 실물 작업만을 다루는 이유

김도원

디자인 디렉터

물성의 진실

디지털 이미지는 무한히 복제될 수 있다. 도자기 그릇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한계가 아니다 — 의미의 원천이다.

이지수와 내가 비욘드 콜렉트를 설립했을 때, 많은 이들이 시대착오적이라 여기는 결정을 내렸다: 실물 작업만을 다루기로. 디지털 아트 없이. NFT 없이. 스크린 기반 설치 없이. 오직 공간을 차지하고, 무게를 가지며, 인간의 손이 닿았다는 흔적을 담은 오브제만.

이것은 기술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다. 물성에 대한 긍정이었다. 우리는 물리적 오브제가 디지털 이미지가 담지 못하는 종류의 진실을 지닌다고 믿는다. 캔버스는 만들어진 역사를 담는다 — 물감의 층들, 수정들, 아티스트가 방향을 바꾼 순간들. 도자기 그릇은 가마의 기억을 담는다, 불과 재의 예측 불가능성을.

“오브제는 증인이다. 그곳에 있었다. 기억하고 있다.”

— 윤미령

윤미령은 전통 도예가로, 장작 아나가마 가마에서 작품을 소성한다. 각 작품이 유일한 것은 그녀가 그렇게 설계해서가 아니라, 가마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재는 원하는 곳에 내려앉는다. 불꽃은 그녀가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표면을 태운다.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불이 나의 협업자에요."

아티스트와 물성 사이의 이 협업이 우리가 찾는 것이다. 대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업 — 아티스트가 제안하고, 물성이 응답하고, 아티스트가 조율하는. 수동적인 표면 위에 미리 구상한 아이디어를 강요하는 작업이 아닌.

무한한 복제의 세계에서, 유일한 오브제는 덜 귀한 게 아니라 더 귀해진다. 한 곳에만 존재하는 그림. 빛이 변화시키기에 정확히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조각. 손짜기의 불규칙함을 담은 직물. 이것이 우리가 믿는 작업들이다.

컬렉터라면, 오브제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미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서버에 저장해두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공간 안에 두는 것 — 아침과 저녁에 다른 빛이 닿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당신과 함께 나이 드는 것.

작성자

김도원

아뜰리에 비욘드 디자인 디렉터. 이 글은 2026년 2월 저널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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